飯豊天皇古墳1

飯豊天皇古墳2

飯豊天皇古墳3

飯豊天皇古墳4

5세기 말경, 유우랴쿠 천황(雄略天皇)에 의해 카쯔라기씨(葛城氏)의 종가가 멸망되었습니다. 그 유우랴쿠 천황의 사후 즉위한 세이네이 천황(淸寧天皇)은 후자를 남기지 못한 채 타계합니다. 얼마 안 있어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카쯔라기(葛城)의 오시미(忍海) 사람들이 대왕가에게 혈연이 있는 두 황자를 찾아냅니다. 그런데 이 황자들, 어케황(億計王)과 오케황(弘計王) 형제는 서로 양보해서 좀처럼 황위에 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시로 정무를 집행한 것이 이이토요노히메미코(飯豊女王)  여왕이었습니다. 오시미(忍海)에 있는 ‘타카기(高木)의 쯔누사시노미야 (角刺宮: 신사)”에서 정치를 하고, 그 황거는 와카에서도 읊어질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야마토베니 미가호시모노와 오시누미노
코노타카키나루 쯔노사시노미야 (‘니홍쇼키 (日本書紀)’)
(의미: 야마토(倭) 부근에서 보고 싶은 것은 오시미(忍海)에 있는 이 타카키의 쯔누사시노미야(角刺宮)다)

이이토요 천황은 역대 천황의 계보에 이름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임시로 정권을 잡은 것뿐이므로 정식으로 즉위했다고는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후소우랴쿠키(扶桑略記)”(※)에는 ‘이이토요 천황’이라고 기재되고 있으나, 몇 가지 기록이 있어, 이이토요 천황에 대한 기술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리추우 천황(履中天皇)의 아이가되었다가, 이치노헤노오시하노미코(市辺押磐皇子) 황자의 아이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단지 오시누미베노히메미코(忍海部女王) 여황이라 불리고 있었던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을 듯이 이이토요노히메미코 여황이 이곳 카쯔라기(葛城)의 오시미(忍海)에서 한때 천황의 지위에 올라, 정치를 집행한 것 같습니다.

이이토요 천황(飯豊天皇)은 기타하나우치(北花內)에 있는 분묘 “이이토요 천황(飯豊天皇) 하니쿠치 고분(埴口古墳)”에 잠들어 있습니다. 현재도 오시미(忍海)의 사람들은 쯔누사시노미야(角刺宮) 전승 땅으로 알려지는 쯔노사시 신사(角刺神社) 옆에 있는 닝카이지(忍海寺) 절에 안치되어 있는 11면 관음보살입상 (十一面觀音菩薩立像: 헤이안(平安)시대)을 “이이토요노히메미코(飯豊女王)  여황의 화신”이라고 구전하고 역사로부터 잊쳐진 여제를 그리워해서 매월 17일에 법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헤이안(平安)말기의 천대종(天臺宗)의 중 코우엥(皇円)이 징무 천황(神武天皇)에게서  호리카와 천황(堀川天皇)까지의 사항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도 30권이라고 전하고, 그 중16권과 초본이 현존(불교관계의 기사가 많이 출전을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