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伯皇女石碑

大津皇子の墓1

이 시에서 ‘망요우슈우(万葉集)’ 연고가 있는 가인(歌人: 작가의 뜻)으로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오오쿠노히메미코 황녀(661~702년)와 오오쯔노미코 황자(663~686년)오누이입니다.
두 사람은 텡무 천황(天武天皇)을 아버지로, 텡지 천황(天智天皇)의 황녀·오오타노히메미코(大田皇女) 황녀를 어머니로 태어났습니다. 뒷날 누나인 오오쿠노히메미코 황녀는 이세(伊勢)의 사이구우(齊宮: 여자 황족)(※)에 불러 들여 집니다. 남동생인 오오쯔노미코 황자는 ‘체격이나 용자가 늠름하고, 관대하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해 지식이 깊어, 훌륭한 문장을 적었다. 성장해서는 무예에 뛰어나고 그 인품은 자유 활달한 왕자이면서 겸허, 많은 사람의 신망을 모았다’(“카이후우소우(懐風藻)”)하며, 장래가 촉망되는 왕자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텡무 천황가 붕어한 뒤, 카와시마노미코(川島) 황자의 밀고로 인하여 모반의 까닭으로 붙잡혀, 이와레(磐余)에 있는 오사다(訳語田: 현재의 나라현(奈良縣) 사쿠라이시(櫻井市))의 자택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황태자 쿠사카베노미코(草壁皇子) 황자가 즉위에 방해되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사세구로서는,

모모즈타후 이와레노이케니 나쿠시기오 케후노미미테야 쿠모가쿠리나무
(이와레의 못에서 우는 도요새를 보는 것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는 죽어 가는 것이다)
“망요우슈우(万葉集)” 권 3·415에 남겨져 있습니다.

남동생에 대한 자애를 어머니와 같이 쏟은 황녀는, 남동생을 염려하여 그 죽음에 임해서 비탄에 잠기는 와카(和歌: 일본 고유의 정형시)를 읇고 있습니다.
이세를 방문한 황자가 귀로에 올랐을 때

와가세코오 야마토니야루토 사요후케테 아카토키쯔유니 와가타치누레시
(나의 남동생을 야마토(大和)에 보내는 것을 배웅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밤은 깊어지고 새벽녘의 이슬에 젖어버렸습니다)
(권2·105)
후타리유케도 유키수기가타키 아키야마오
이카니카키미가 히토리코유라무
(둘이서 가도 넘어가기 어려운 가을의 산을 어떻게 해여 당신은 혼자 넘을 것인가)
(권2·106)
황자의 유해는 니죠우 산(二上山)에 이장 되었습니다. 오다케(雄岳) 정상에는 오오쯔노미코 황자 니죠우 산무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쯔소미노 히토나루와레야 아스요리와
후타가미야마(二上山)오 이로세토와가미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나는, 내일부터는 후타가미야마(二上山) 산을 남동생이라고 생각하며 보는 것일까)
(권2·165)

※ ‘이쯔키노미야’라고도 불려, 천황을 대신해서 이세징구우(伊勢神宮) 신사에 시중들기 위해서, 천황이 바뀔 떄마다 황족 여성 중에서 뽑혀 도읍에서 이세로 파견되었다.